목록유아인/1일 1작은집 (40)
White Chocolate
6 2010.06.23 05:24 촌스러움의 미학과 시대적 가치를 조명한 김봉숙의 어느 교양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다. 지향점이 같다는 것은 개성의 말살을 초래한다. 허세난 허영같은 말이 유행하고 어느 레이블의 모노그램 가방은 이제 촌스러운 것이 되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던을 쫓아가고 신상이 각광받는 이 시대에 몸빼바지를 입고 다니는 여인의 존재가 그저 다른 형태의 반발로 묵살당하지 않은 것은 다르다는 것이 이 시대의 대류 속에서 뿜어내는 분명한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어떤 시절에 한번쯤은 특별한 삶을 꿈꾼다. 혹은 평생을 그 환상을 쫓는데 할애하기도 한다. 특별한 삶을 보통의 인간으로 살아내거나, 보통의 삶을 특별한 인간으로 영위하거나. 나는 멍청한 선택의 기로에서 그것들을 충분히 고민할 만한..
5. 2010.04.14 16:12 초등학교때 '나의 주장 발표대회'에 나가 입상한적이 있었다. 남북관계에 대한 지극히 초딩다운 견해를 정치인처럼 줄줄외워 배에 힘을 주고 발표하는 웅변 비슷한 대회였는데 팔을 벌리거나 과장된 입모양 같은건 하지 않아도 됐다. 글은 같은 주제로 전국대회에 까지 나갔던 누나가 대신 써 준 것이었고, 나는 거울 앞에서 미간을 찌푸렸다 펴기를 반복하며 가장 덜 멍청한 눈빛을 연구했다. 목소리는 충분히 까랑까랑했고, 나름 뱃심도 좋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무슨 말을 지껄였었는지 잘 생각은 나지 않는데, 무튼 꽤나 호소력 있는 발표였고, 결과는 1등이었다. 부끄럽지는 않았다. 글은 집에가서 써도 좋다는 허용부터가 어처구니없지 않나. 나는 숙제로 대신했던 독후감 대회나 그림대회 같은..
4. 2010.02.02 21:06 내가 사는 아파트 1층의 편의점이 폐업했다. 편의점인데 12시면 문을 닫으니 나같은 올빼미의 편의에는 썩 맞지 않는 편의점이었다. 다른 편의점은 길 건너에나 있으니 이제부터 담배는 줄고, 충치가 덜 생기고, 더 건강해질 것이다. 처음 여기로 이사왔을때 자기 딸이 좋아한다며 싸인을 부탁하던 편의점 아줌마는 그 후로 내가 다녀가는 내내 끼니를 챙겨 묻고, 일은 잘되는지 묻고, 더 필요한건 없는지 물으며 서비스를 챙겨주었다. 밥은 먹었다고 했고, 일은 잘되고 있다고 했고, 더 필요한것은 없다고 했지만 기어코 옆구리로 찔러주시는 음료수를 받아들고 머쓱하게 감사인사를 하곤했다. 어떤 날은 그 친절이 너무 불편해서 담배를 참고 차에 올라타 매니저의 것을 뺐어 문 적도 있었다. 생..
3. 2009.09.02 05:03 "쌀쌀해." 라는 말을 생각 보다 더 일찍 꺼내 입었다. 시커먼 팔꿈치가 훤히 드러나는 반팔 티셔츠 위로.집에 오자마자 드레스룸에 들어가 널부러진 빨래더미를 대충 수습하고 옷장 문을 죄다 열어젖힌다. 매년 하는 생각. '지난 해 열성으로 사모았던 옷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올 봄에 입었던 가디건의 먼지를 털어내고, 세일때 사두었던 자켓을 걸쳐본다. 밤이면 제법 쓸쓸한 바람이 불고 이 여름, 에어콘 아래에서 다 쏟아내지 못 한 땀방울이 무안하리 만큼 가을은. 엉겁결에 덮쳐올 것이다. 3,4,5월은 봄. 6,7,8월은 여름. 9,10,11월은 가을. 나머지는 겨울. 어릴때 나는 그런줄로 알았다. 반팔은 여름. 긴팔은 겨울. 그 두가지가 모두 활보하는 날은 봄이나 가을..
2. 2009.03.21 20:03 조카에게 전해줄 운동화 두 켤레를 몇일째 가방에 쑤셔넣고 다니다 굳이 폭우가 쏟아지는 날을 잡아 큰 누나의 2년된 신혼집을 찾았다. 누나가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왔을때 부터 나는 그녀의 신혼집을 상상해왔다. 구석구석 아이의 장난감들이 널부러져있고, 티 테이블엔 다소곳한 표지의 가계부가 정갈하게 덮여있는 김치찌개 냄새로 가득한 집. 그녀 집의 풍경은 나의 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훨씬 더 평온했고, 두터웠다. 아이방엔 유행한다는 무슨 브랜드의 침대가 솟아있고, 벽에는 영어 스팰링이 도배되어있고, 책장은 내 집 거실의 그것보다 더 큰것같았다. 조카는 이제 막 돌을 지났다. "유난떨지마, 좋은 음악이나 골라서 들려줘"나는 한심하다는듯 잔소리를 던져놓고 그 방 문을..
1. 2009.03.04 20:25 굳이 먼 기억은 아니고, 지금보다 더 괴상한 말들을 중얼거리던 어린애였을때.그러니까 남들만큼 대가리에 피가 말라가고 첫사랑의 망령에 밤잠을 설치던 그런 어린애였을때.고통.썩은지 한참 지난 이빨을 혀 끝으로 후벼파며 나는 고통에 몰두했다.나는 시린 어금니 틈새에 지난 사람과 거기에 속했던 사람과 그간 내가 빨아 먹은 막대사탕 찌꺼기가 남아 그렇게 썩어버린 거라고 생각했다. 거창하고 시적인 나의 어금니는 오래가지 않아 섬뜩한 아말감으로 때워졌지만 그렇다고 나의 기억들이 동네 구석 치과에서 모두 마감된건 아니다. 물론. 나는 한강 둔치의 난간 위를 걷고 있었다. 그때는 고수부지란 일본식 표현을 썼다.서강대교. 정확히는 서강대교 북단 아래로 녹이 쓸고 삐걱대는 엉성한 철재 계..
2008.03.17 00:03 그렇게 나는 누구의 심장에서도 자라지 못하고 누구의 세상에도 머무르지 못 해 식은땀 났던 악몽이거나 넘어진 자전거 처럼 나로 뿜었을 연기 사이 가로질러 무릎에 베인 흉터이거나 가녀리게 베어진 종잇장이거나 기억되고 잊혀지고 무엇이고, 어떻다 하여도 지난 당신 어디쯤 가있을지 모를 자전거 타던 바람처럼 당신에게, 나는 서글플 것도, 가슴칠 것도 아닌 서툰 기억 속 기분좋게 가르지르던 자전거 타던 바람처럼 ..... 기억되고 잊혀지더라도 자전거 타던 바람처럼 너를 느껴주었으면 하였던 바람일까 나한테는 이미 너무 깊숙히 기억되서 기억을 잃지 않는 한 바람처럼 지나가듯이 잊지는 못할거같다
2009.10.27 14:16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2008.02.26 01:08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내가 너희를 허락할 수 있게 ..... 비슷한 시를 두 번 썼네 이런 생각이 많았나봄 ㅎ 부끄러운 줄 안다는건 자신의 잘못을 안다는 거니까 용서받을 수 있는 거겠지
유난히 2007.07.18 22:17 유난히 촉촉한 아침 빛이 가득한 올빼미의 밤 이나영씨가 추천해 주신 다방커피 염치없는 모기들 더욱 수북한 꽁초들 전혀 새롭지 않은 음악 하지만, 낯설은 익숙함 굳이 들추어낸 시간 앞에 선 발자욱 희미한 떨림 견디기 힘든 상처 더해진 생채기 내버러 둘 수 없는 젊음 곱게 재단된 감성 환기를 위한 몸부림 ..... 아파도 몸부림치며 살아가는게 인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