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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자료

스튜디오 콘크리트 대표 유아인이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

LSGO 2016. 5. 6. 21:20

스튜디오 콘크리트 STUDIO CONCRETE EXHIBITION에 전시되어 있는 스콘 대표 유아인이 친구들에게 쓴 편지들


15.05.13





혜영아, 홍식이야. 맥주 한 캔 마셨더니 너에게 주절주절하고 싶어져.

시행착오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지만 지금 까지 참 잘해줬어. 내가 했다면 훨씬 더디고 못나고 어설펐을거야.

함께 겪었어야할 시행착오 혼자겪으며 들었을 너의 자괴감. 괜찮다고 어깨두드려주지 못했어서 마음이 많이 남네.


혜영아. 좋았던건 본질 따위 개나 줘버려도 좋은 현실 안에서 매 순간 스튜디오 콘크리트의 본질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확장해 나가며 크루들 하나 하나의 행복과 꿈과 미래까지 따뜻하고 사려깊게 어루만지는 너의 마음이었어.

그게 가장 좋았어. 누구보다 프로였고, 멋지게 해냈어. 가끔 검정고무신이지만 넌 참 좋은 파트너고, 훌륭한 대표님이야!

이런 간지러움이 겸연쩍은걸 보니 따뜻한 말한마디 조차 어지간히 안해줬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하네.

미안했어요.


결과론적인것 말고 지금 이 순간 어떤 마음을 갖느냐가 무엇 보다 중요할테니

네가 처음 그 예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간직한채 콘크리트에서의 하루 하루를 맞이하길 바랄 뿐이야.

커피가 세 잔 밖에 안팔려서 어디 하소연도 못 할 만큼 쪽팔리는 날도 있을거고,

억만금짜리 계약이 줄줄이 성사되어 황동 바닥을 트위스트로 비빌 날도 있겠지.

일희일비 말고 일장일단을 충분히 이해하며 이제 식구같은 우리 아티스트들, 크루들 또 우리의 터전 다 잘 챙기며 예쁘게 하자.


그리고 하나 더. 지금도 훌륭하지만 아티스트들이 진짜 자기 일을, 자기 세계를 구축한채 집중적으로 작업을 해낼 수 있도록 더 많이 서포트하고, 좋은 여건을 만들어주자. 수도 없이 얘기했지만 그 애들이 보물이야.

때로는 방목도 하고 때로는 애살맞게 챙기며 하자.

그 애들이 우리를 어떻게 여기게 될지, 어떻게 떠나갈지,

행여나 뒷통수를 후려갈길지 모를 일이지만 지금 너무 보석 처럼 반짝이는 그 애들, 있어야 할 자리에서 더 찬란하게 빛날 수 있도록 많이 생각하자.

그게 우리의 일이잖아^! 나보다 더 끈끈한 무언가가 너에게는 왜 없겠니.


다른 얘기 할까. 친구야.

요즘은 매일 도망가고 싶은 마음의 연속이야. 내가 세상에 벌려 놓은 것들이 날 붙잡아줄거다 생각하고 시작한 일들인데 역시나 잡네. 발목을. ㅎ

정말 멀리멀리 떠나서 마음껏 온 세상을 사랑하며 살고 싶다. 속죄하듯. 하지만 욕망은 또다른 레벨에서 더 어마어마한 것들을 뻔뻔하게 좇게 되겠지.

청춘은 생각보다 멋지지도 않고 쿨하지도 않고 괴롭기 짝이 없는데 왜 그리도 이것에 집착하며 살았을까…

나는 아티스트일까, 그저 쿨한 포장지와 총알이 필요한 속물일 뿐일까.

나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나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나. 나는 내가 바라는 위대한 사랑을 한번이라도 세상을 향해 보낸 적이 있었던가..


흐흐

어지러운 밤이네.

지금은 부대끼겠지만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거든 좋은 와인 한병 마시며 대화 나누자!

무슨 해답이 있어서겠니. 뭘 바라겠니. 하수구인지 배수구인지 세상 한구석, 내 마음 털어놓을 곳 있어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다.

그거면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인거지. 최선으로 있어줘서 고마워. 너에게 이러고 있는 나를 보니 너를 참 많이 사랑하고 의지하고 있나보다.


나도 네 세계의 그런 자리쯤에 항상 있을께. 괴로울때 고해성사해줘^^

















2

2015.05.01




안녕? 콘크리트. 나야 엄대표ㅋ 오프닝 전시가 이틀 남은 목요일 새벽, 새삼스럽게 창문 틈으로 동이 트는 꼬라지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너희에게 보낼 cheesy한 편지를 써. 함께 몇 달 간의 시간을 서로 부대끼며 어마무지한 피로감과 자괴와 고뇌와 후회의 시간을 보냈더랬지. 미안^^. 그럼에도 나는 과분한 위로를 받았고, 조금은 더 세상을 이해할 수 있었고, 예측할 수 없던 깨우침들로 기껍게 뒷통수를 두들겨 맞기도 했어. 더불어 엿같은 세상에서 몇 평은 더 커진것 같은 '나'라는 존재감도 느낄 수 있었어. 언제나까지 보잘것 없을테지만 삶에서 그건 참 중대한 일이잖아. 너희 덕분이었어.


혜영후니철화바다노섭지은이! 살아단다는 것이 그런거란 것쯤은 고역이지만 흥미진진했던 지난 인생 돌이켜보면 어지간히들 배우고도 남았겠지. 너희에게 주어진 시간을, 공간을, 사람들을 감사히 여기고 5000만분의 1만큼의 존재감으로, 벗어날 수 없는 60억분의 1만큼의 human being으로서 감히 타인과 세상에 너희를 꺼내 보이고 그들을, 그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격스러워 하렴. 기준은 저마다 달라도 그것으로 우리는 성장하겠지. 희미한 목적은 조금 더 선명해질테고 지도를 상실한 지금 이곳의 과정도 보다 용감하게 채워질거야. 그리고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쿨'한 모양새로 모든게 'transit' 되겠지.


'고작'일 수도 '거창'일 수도 있는 우리의 순간을 감히 다 이해하고, 숙명을 소화하고, 또 전전긍긍하며 운명을 만들어 보자. 엎드려 팔을 뻗어도 끝이 땅에 잘 닿지 않을 만큼 육체는 굳어버렸지만 여전히 철부지이고 말랑말랑한 우리 마음들을 한껏 이완시킨채로 이 과정의 반작용을 온몸으로 맞이하자. 떠밀려 앞날로 스며 보자. 위대한 역사이건 지리멸렬한 사건이건 우리의 순간들은 분명 뜨거울거야.


졸라게 이빨을 까고 졸라게 쳐마시며 졸라게 열을 내보도록 하자.ㅋ


즐기도록 해. 그리고 진심으로 해. 나는 때가 되거든 귀신 같이 알아채고 나비처럼 떠나가도록 할게. 고마워. 하나 같이.


2015.5.1

From. Sik
















3

2015.08.07




안녕? 콘크리트 친구들. 새벽 4시, 콘크리트를 급습해 훈이의 첫 전시를 미리 점검하고 오는 길이야. 여전히 불을 밝히며 짜증을 싸는 철화와 노섭이 개고생의 나날을 보냈을 훈이. 뒷바라지하랴 커리어우먼 코스프레하랴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미안한 혜영, 지은이 모두 고마워.


강 건너 불구경으로 품은 감사는 얄미운 위로이자 생색으로 이만 각설하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겹게 하지만 무심히 스치던 남산 언저리의 못나고 시퍼런 표지판 아래를 지나며 차의 속도를 줄이게 되더라. 그리고 거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훈이에게 또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어. 엉성한 사색의 시간을 불법유턴에 정신 팔려 어설프게 마감하고 막 집에 도착해 편지를 쓴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평소보다 조금 더 늘어진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했어. 조울중에 빠져 글 속에서 허덕이던 때에 시퍼런 윈도우로 세상에 '나'라는 신호를 보내며 애타게 응답을 기다리던 지난날의 나를 떠올렸고, 여전히 세상을 향해 다 가닿지 않을 나를 꾸역꾸역 던지며 살아가는 내가 애처로운 자위를 하기도했어. 그리고 애증하는 이 도시 풍경의 어느 조각이 아름답다고도 생각했지. 잠시 '작가 김재훈'의 시선을 빌려서 말이야.


자신의 시선과 정답을 장담할 수 없는 매듭을 결과로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일까. 비좁고 울퉁불퉁한 그 통로를 내어 주는 그 일이 얼마나 낯뜨거운 일일까. 나의 경험을 빌어 짐작해 본다.


고만고만한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대단히 주름이라도 잡을수 있을 줄로 알고 예술을 하겠다고 까불면서도 스스로를 기어코 하찮은 존재로 몰아세워야 그나마 한발짝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 일이,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곤혹한 고역일까. 어느날엔 죽지 못하고 이 짓 밖에는 할 일이 없어 꾸역꾸역 제 삶을 갉아 먹으며 우리는 예술가로 살아내야 하겠지. 하지만 그건 놀랍게 아름답거나 대단한 의미를 담거나 명확한 메세지를 담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있는 일임은 분명해.


친구들아 우리의 일은 결코 정답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야. 그러니 너무 좌절하지마. 이건 세상이 정답인 양 떠드는 일들에 동조해 거짓 박수를 보내며 뱁새의 다리를 찢어야 하는 그런 일이 아니야. 그리고 이건 대단히 자랑스럽게 펄럭이며 박수에 심취해야 할 일도 아니지. 그러니 너무 꼴값을 떨지도 말자. 이것들은, 이 일들은 그냥 그렇게 버겁고 낯 뜨겁고 고역인, 애써 다른 몸부림 같은 것들 중 하나가 아닐까. 적어도 지금 우리를 살게 하고,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는. 세상에 우리의 주파수가 닿지 않아 지직댈 지라도..


세상에 하나뿐일 각자 스스로를 이해하고, 그것을 어쭙잖은 결과로 세상에 드러내겠다고 안달인 너희의 기질을 충분히 이해하길 바라. 너희는 그런 예술가니까. 그 장엄한 말 앞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내게는 너무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저마다 자신을 드러내고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관종이라면 싸잡아 화형식이라도 치뤄야 뒤틀린 속을 풀어 줄 것 같은 세상 속에서 튀겠다고 안달인 연예인짓을 해 먹고 사는 나는 매순간 다른 나를 확인하며 지옥을 살아. 외롭다는 몸부림도, 살아있다는 불필요한 확인들도, 아름답다는 그 비참함함도 다 집어 치워야할 정답들도 갈기갈기 찢어 변기통에 넣고 돌려 버려야할 지랄맞은 것이더라만...!


그럼에도 지금의 내가 친구의 눈과 마음을 빌어 발견한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결국엔 정답도 오답도 아닐 어느 조각의 파편들을 너희에게 공유할 수 있어 나는 덜 외롭다. 그게 제일 고마워. 작품이라 불리는 프레임 속의 그것들은 거기까지인 채로 세상에 던져버리고 솔직하고 담대하게 다른 눈들을 기껍게 맞이 하렴.


얼마나 더 뻔뻔해져야 이것을 서울 하늘 아래에 깃발로 꽂아 자랑스럽게 휘날릴 수 있을까. 괴물이 되어가는 나는 가끔 너희를 부러워하며 호화빌라 구석에 여름 돈벌레 마냥 쳐박히고는 해. 흐흐, 안녕!


p.s

나는 훈이의 이번 전시 참 예쁘게 잘 보인다. 우리가 징그럽다고 비아냥대기 좋아하는 그것들과 분명한 차이가 보이고, 대범하고 말쑥한 눈이 느껴져. 결과물은 깨끗하고 과하지 않은 삐딱함도 좋아. 그 안의 것들은 참 곱고, 시원하고, 가증이 없어 신선해. 참 잘했어요.


2015.8.7

From. Six












전시회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BFDIxYis_L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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